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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줌파 라히리 (Jumpa Lahiri) in other words
    읽고 본거 2016. 7. 8. 05:19
    이 전 블로그에서 펌




    한국어로도 번역되어 나왔나보다. 한국 제목은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항상 생각하지만 한국에 번역되는 책들은 제목이 언제나 그럴듯하다. in other words를 말하자면 다른말로 하면 이렇게 번역해 놓으면 누가 사겠는가.

    자기의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글을 발표한 작가는 많이 있다. 내가 아는 작가만해도 참을수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쓴 밀란 쿤데라가 모국어인 체코가 아닌 프랑스어로 소설을 여러권 냈었고 하루키만해도 영어로 글을 쓴적이 있다. (책으로 발표를 했는지 기억은 나지않음). 라히리는 이탤리어로 이 책을 썼으며 최근에 영어로 번역되어 미국에 출판되었다.

    하루키가 쓴 수필중 하나인 슬픈 외국어를 미국에 처음 왔을때 읽었었고 외국어와 외국인으로 사는 이질감 같은거에 슬펐었었다. 그때는 5년만 지나면 괜찮아 질까 했었던 기억이 나는데 나는 미국온지 올 9월이면 15년이 된다. 아마 이제는 교포라는 말이 더 잘 맞을거 같고, 한국인 미국인 국적 자체에 대해 크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으며 이제는 그냥 귀찮음의 이유로 내일이면 미국 시민이 된다.  이민국에 계속 가야하지 않아도 되고 10년마다 영주권 갱신으로 거의 1000불씩 내지 않아도 되었다면 아마도 나는 계속 영주권자로 남아 있었을것이다. 

    나는 영어는 중학교때 알파벳부터 배웠으며 대학 졸업할때까지 미국 사람과는 얘기도 해 본 적이 없었다. 시골에서 컸고 외국 나가서 사는 친척도 없었던 내가 미국 와서 살거라고는 생각도 해 보지 못 했었다. 

    미국에 와서 살기전에 출장으로 미국을 여러번 왔었고 내가 언어 소통에 문제가 많구나는 실감하였으나 와서 살것도 아니었으므로 말하는것에 대해 크게 신경을 쓰지도 않았었다. 그러다 유학을 오면서 시험때문에 토플과 GRE로 6개월을 보냈고 영어 단어 외우느라, 하루에 한 100개씩 새 단어를 외웠었던거 같다. 

    그리고 미국..
    공대로 진학을 했으므로 외국인 특히 인도 학생들이 많았다. 그들은 영어를 무척 잘 했다. 
    석사 2년동안 나는 교수들도 대부분 외국인에 학생들도 대부분 외국인인 환경에서 지냈다. 영어를 못 해도 이해가 되는 환경이었다. 그에 반해 학부 학생은 거의 대부분이 미국아이들이었다. 

    문제는 내가 졸업을 하면서 발생했다.
    아직도 우체국 가서 줄서서 무슨말을 해야 하나 줄을 서서 "연습"과 "시나리오"를 머릿속에서 계속 생각하던 내가 기억난다. 13년전이다. 

    물론 이제는 이런거 전혀 문제도 안되고 전화 영어는 싫지만 해야하면 하고 직장도 아주 오래 다녔다. 하지만 영어는 여전히 이질적인 언어이며 자연스럽지 않다. 요즘은 한글로 된 소설에 푹 빠져서 한달에 두권씩 읽어대고 있다. 

    줌파 라히리는 뱅갈지역의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서 학교가기전까지는 뱅갈어가 모국어였다. 그 후 학교에 가서 영어를 배워야 했으며 영어는 그녀가 사고 하는 언어가 되었다. 영어를 완벽하게 엑센트 없이 하지만 여전히 미국인은 그녀의 외모를 보고 외국인으로 간주하며 그녀의 부모인 뱅갈을 방문할때는 그녀를 인도인이라 여기지 않고 미국인이라고 본다. 소위 모국이 여기도 아니고 저기도 아닌 그 사이에 낀 사람. 나의 딸도 이렇게 될거 같아 약간 슬프기도 하다. 집에서 한국말을 쓰라고 하지만 아이의 한국말은 어설프고 자기 표현이 어렵다. 그렇다고 미국 사람도 아니다. 만약 아이가 남편처럼 그런것에 무딘 사람이면 그냥 아무렇지도 않고 넘어갈지도 모르지만 남편의 동생처럼 민감하다면 커서도 매일 매일 자신이 어디에 속해있나 고민을 할것 같다. 내 바람은 그냥 무딘 사람으로 자라줬으면 좋겠다. 


    줌파 라히리의 in other words는 이탤리어로 출간된 그녀의 20년 이탤리말을 배우는 이야기와 애증의 관계에 대해 쓴 책이다. 말을 잘 배우기위해서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그녀는 지난 몇 년 이탤리에 가서 살게 된다. 이탤리를 완벽히 배우고 사용하기 위해 영어로 된 매체를 끊고 이탤리어로 된 책들만 읽고 쓰고 하며 보내지만 그녀는 이탤리어를 완벽하게 한다는건 불가능하다는 걸 깨닿게 된다. 

    그녀가 이탤리어를 배우기 시작한건 20대 중반이었으며 이탤리어를 위해 과외를 하고 이탤리를 들락날락하며 결국은 가서 살게 되지만 이탤리어를 더 배울 수록 더 좌절하게만 된다.

    이 책은 아주 실험적인 책이긴 하지만 내 짧은 생각에는 몇 챕터를 신문이나 잡지에 기고 하는 식으로 했으면 더 나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많은 부분이 반복적으로 나오고 얼마나 자신이 열심히 노력했나, 그리고 어느날 이탤리어로 글을 쓰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는것등.. 

    가장 좋았던 챕터는 the wall이라는 챕터로 언어의 장벽에 대해 쓴 글. 남편은 라틴 사람이라 이탤리어 사람처럼 생겨서 이탤리에서는 남편 얼굴만보면 이탤리언인줄 알고 몇 마디 해도 엑센트 없이 잘 한다고 칭찬받는 반면에 자기는 죽어라 연습해도 다들 영어로 질문을 하고 자기가 하는 이탤리어는 못 알아듣겠다는 반응을 한다는 이야기...  May I help you..아주 슬픈 네 단어. 

    또 좋았던 내용은 
    첫부분에 호수에서 수영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호수는 작고 아침이면 몇명 사람들이 호수를 수영해서 건넜다가 다시 돌아온다.
    작가는 수영하는것이 익숙하지만 호수 중앙은 깊고 바닥이 보이지 않는걸 알고 무서워 시도를 하지 못하고 그냥 호수 가장자리를 따라서 수영을 하곤했다.
    그러다 어느날 다른 사람들과 같이 호수를 건넜다가 오게 된다. 하고 보니 별거 아닌 그런일이 되었다.

    뒤에 나오는 챕터는 이탤리어를 더 배우면서 알게 된건 언어를 배우는건 작은 호수에서 수영하는것이 아니라 망망 대해를 수영하는것이라는 것이었다. (정말 이다.. 알면 알 수록 더 좌절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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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Fragile Shelter

    How is it possible that when I write in Italian I feel bothfreer and confined constricted?

    Maybe because in Italian I have the freedom to be imperfect.

    I know that one should have a thorough knowledge of thelanguage one writes in. I know that I lack true mastery.

    I know that my writing in Italian is something premature,reckless, always approximate. I'd like to apologize. I'd like to explain thesource of this impulse of mine.

     

    Venice

    Yet both in Venice and on the page, bridges are the only wayto move into a new dimension, to get past English, to arrive somewhere else.

    Every sentence I write in Italian is a small bridge that hasto be constructed, then crossed.

    I do it with hesitation mixed with a persistent,inexplicable impulse.

    Every sentence, like every bridge, carries me from one placeto another. It's an atypical, enticing path. A new rhythm. Now I'm almost usedto it.

     

    The imperfect

    Because of my divided identity, or perhaps by disposition, Iconsider myself an incomplete person, in some way deficient.

    Maybe there is linguistic reason- the lack of language toidentify with. As a girl in America, I tried to speak Bengali perfectly,without a foreign accent, to satisfy my parents, and above all to feel that Iwas completely their daughter. But it was impossible.

    On the other hand, I wanted to be considered an American,yet, despite the fact that I speak English perfectly, that was impossible, too.I was suspended rather than rooted. I had two sides, neither well defined.

    The anxiety I felt, and still feel, comes from a sense ofinadequacy, of being a disappointment.

     

    The wall

    Here is the border that I will never manage to cross. Thewall that will remain forever between me and Italian,  no matter how well I learn it.  My physical appearance.

    By when I go into a shop like the one in Salerno I findmyself abruptly hurled back to shore. People who don't know me assume, lookingat me, that I don't know Italian.

    When I speak to then in Italian, when I ask for something,they say, puzzled. "I don't understand." It's always the sameresponse, the same scowl. As if my Italian were another language.

     

    After lunch, something catches my eye in the window of ashop selling shoes and purses on Via del Corso. I go into the shop. This time Isay nothing. I'm silent.

    But the saleswoman, seeming me, says immediately, inEnglish, "May I help you?" - four polite words that every so often inItaly break my heart.

     

    The triangle

    A few years later, however, Bengali took a step backward,when I began to read. I was six or seven. From then on my mother tongue was nolonger capable, by itself, of rearing me. In a certain sense it died. Englisharrived, a stepmother.

     

    I was ashamed of speaking Bengali and at the same time I wasashamed of feeling ashamed.

    I saw the consequences of not speaking English perfectly, ofspeaking with a foreign accent. I saw the wall that my parents face in Americaalmost every day.

    It was a persistent insecurity for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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